칡칡맞아. 숙취가 지독해서 천장만 보고 누워있던 날 > 약재산책 |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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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칡맞아. 숙취가 지독해서 천장만 보고 누워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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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를 만나 4시부터 조개찜에 낮술을 걸치며 시작된 토요일. 2차로 양꼬치를 먹고 정신을 차리니 집에서 3차를 하고 있었던 그날. 자정 12시 땡 하자마자 낮에 먹은 조개살을 다시 보며 지옥의 숙취가 시작되었다.

숙취에는 이라고요?

장장 12시간짜리 숙취였다. 그냥 술병이 난 거다. 새벽내내 10분마다 화장실을 찾았고 나중엔 위액도 못 토해서 물 한 모금을 억지로 먹어 토를 해냈다. 해냈다고 하는 게 맞다. 누군가는 토를 참아야 한다, 토를 왜 하냐, 애초에 그렇게까지 술을 왜 마시냐고 말할 수 있지만 숙취가 이렇게 심할 줄 전날의 나는 미처 알지 못한 탓이다. 맞다, 다 내 탓이다….

오전 11시쯤 되자 발을 까딱이며 누워있던 친구가 '너 그래도 화장실 가는 주기가 짧아졌어. 괜찮아지고 있나봐.' 하며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거울엔 새하얗게 변한 얼굴이 눈코입을 박고 달걀귀신처럼 둥둥 떠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화장실에서 나와 웅크리고 눕자 친구가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말했다. 야, 헛개수 까만색?

e9997b64d43aa9493ba93c0ad674a9fe_1655435881_32.jpg광동 헛채가 (출처: 광동 홈페이지)

숙취음료도 참 여러가지지만 다 토해내는 입장해서는 편의점 헛개수가 제일이다. 약국의 숙취약도 먹어봤자 몇 분 안 가 토해내고, 음주 전후 상쾌한, 간만세, 깨수깡으로 범벅도 해봤지만 내 숙취는 방탄숙취라 소용이 없었다. 보리차보다 좀 더 달달하고 물 비린내가 없어 구토를 삭혀주길래 술 먹은 다음날엔 꼭 까만색 패키지의 헛개수를 마셔왔더니 이제 친구들이 알아서 챙겨준다.

'지구자'라고도 불리는 헛개열매는 건포도, 대추과와 사촌이라 얼핏 그 비슷한 달달한 맛이 나는데 그래서일까. 나름 당분과 수분이 채워져 알콜 해독의 효과를 본 게 아닌가 한다. 플라시보일 수도 있고. 다른 건 몰라도 구토를 잡아주는 약은 세상에 꼭 필요하다. 그런 약 있으면 꼭 추천 받고 싶은 마음.

집에서 골골 앓으며 천장만 보고 누워있자니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목소리가 왜 그러니?"

"나…."

"너 또 술 먹었니?"

조개찜에 있던 건 내 입이었을까. 할말이 없어 조개처럼 조용히 다물었다. 잔소리와 함께 헛개수와 이온음료를 설파하던 엄마는 불현듯 칡 얘기를 꺼냈다.

"칡도 숙취에 좋다더라. 칡즙 있으면 좀 먹어."

칡즙이 어디있어. 자취하는 사람 중에 칡즙 두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전화를 끊고 칡을 검색했다. 살아야 하니까

칡.

- 알코올 분해 촉진 효소를 가지고 있어 음주 후 갈증, 구토, 설사를 진정시킨다.

- 겨우내 땅속 깊은 기운을 머금고 자라난 봄 칡이 수분과 진액이 올라 좋다.

- 순, 뿌리, 껍질, 잎, 꽃 모두 약재로 쓰이지만 숙취해소에는 즙이나 가루에 꿀을 타서 먹으면 굳!

- 약간의 싸한 매운맛과 달달함이 같이 느껴지는 맛.

이러저러 여러 효능이 있지만 대체로 간에 좋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칡즙은 좀….

좀 다르게 칡을 먹어볼 수 있을까 해서 칡의 아웃풋을 찾아봤다. 칡을 빻아낸 즙을 가만히 놔두면 앙금 같은 게 가라앉는데 그걸 여러번 물을 갈아주고 최종적으로 말리면 칡가루(갈분)가 된다. 같은 구황작물이라 그런지 감자 전분 내는 것과 똑같다. 그럼 칡전도 부쳐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찾아봤더니 정말로 있다. 칡부침개. 감자떡과 같이 투명하게 쪄지는 칡떡(갈분떡)도 만들 수 있더라. 옆나라 일본에도 쿠즈모찌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갈분떡이 있고, 갈분 피에 팥소를 넣어 차게 먹는 미즈만쥬라는 것도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물방울떡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식감은 쫀득하고 맛은 깔끔한 단맛이라고.

e9997b64d43aa9493ba93c0ad674a9fe_1655435928_1.jpg일본의 미즈만쥬 (출처 : 유튜버 D)*

농촌 할머니댁 마루 한켠에 쌓여있는 큰 뿌리 정도로만 생각했던 칡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쓰이고 있었다. 칡 전분을 끓여 칡묵을 만들기도 하고, 뿌리를 아작내어 차(갈근차)로 마시기도 한다. 칡가루에 생강즙과 꿀을 반죽해 갈분다식을 해먹기도. 수라상에는 갈분으로 만든 면발을 오미자 국물에 띄운 창면(수면)이 여름 별미로 올랐다고 한다. 최근엔 칡과 우유를 조합한 칡 우유 상품도 있더라. 맛이 쓸 것 같지만 막상 먹으면 쓰지 않고 달달하다고 하니 궁금해진다.

e9997b64d43aa9493ba93c0ad674a9fe_1655435928_2.jpg칡가루를 뭉쳐 만드는 갈분다식

식용으로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칡으로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곧고 얇은 칡 덩굴을 길게 여러가닥 잘라서 똬리 틀듯 만든 리스. 넝쿨을 곧게 말려서 촘촘히 짠 바구니. 둥글게 가닥가닥 엮은 냄비받침 같은 것들. 실제로 사용하려고 만들기도 하지만 체험이나 교육용으로도 칡 공예를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라탄처럼 전등갓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칡 리스는 여러개 만들어 말려두면 연말쯤 크리스마스 리스로 꾸미면서 소소한 힐링을 꿈꿔봄 직하다. 봄칡, 여름 칡전등갓, 가을 칡차, 겨울 칡리스라면 사계절 내내 칡과 함께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숲 체험 프로그램에 아이와 함께 가면 꼭 주목 받는 시간이 '거품벌레 만들기', 칡 줄기로 하는 비눗방울 놀이 시간이다. 칡은 깊은 땅속에서 수 미터 이상 뻗은 높은 줄기까지 수분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줄기 속에 넓은 물관, 체관(관다발)이 지나간다. 칡 줄기를 빨대처럼 짤게 잘라 한쪽에 비눗물을 찍고 반대쪽을 후 불면 관다발로 공기가 지나가며 비눗방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근데 우리가 아는 그런 동그란 비눗방울이 아니라 거품뱀처럼 길게 나온다. 게거품 같이.

e9997b64d43aa9493ba93c0ad674a9fe_1655435928_3.jpg칡줄기 단면. 물과 양분이 흐르는 관이 보인다.

이외에도 칡의 빠른 성장력은 주변 식물의 성장을 저해시켜 이따금 유해종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이 칡을 자원화해서 산업적으로 이용할 방안을 여러 부처에서 연구중이다. 칡이 가진 섬유질을 활용해 섬유화(홈텍스타일)하는 연구가 대표적. 친환경 트렌드가 대두되는 때에 친환경 섬유의 상품화는 쌍수들고 반길 일 아닐까. 사실 칡의 섬유질은 예로부터 활발하게 활용되어 왔다. 물에 삶은 칡 덩굴 껍질로 짠 천을 갈포라고 하는데 동북아시아에서는 고대 원시직물의 일종으로 꼽힌다고. 종이로 치면 파피루스, 닥종이 레벨쯤 되는가보다. 이런 갈포는 옛날 귀한 분들의 상복이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고오급 벽지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e9997b64d43aa9493ba93c0ad674a9fe_1655435928_39.jpg칡덩굴 섬유질을 활용한 타올 (칡덩굴 25% 함유/ 출처: 전남산림자원연구소)*

가만히 칡을 찾아보다가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 작용하는 이소플라본이 많이 들어있어 완경을 앞둔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는 구문을 발견했다. 엄마가 갱년기지. 몸에 열이 올라 잠을 못 자고 부채질 하던 게 떠올랐다. 갱년기 여성을 위한 칡즙을 구매하며 갑자기 엄마가 추억에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끊기 전에 한숨처럼 말했던 게 떠올랐다.

'엄마 어릴 땐 사루비아 꽃 쪽 빨아먹고, 칡 씹어서 단물 빼먹고 그랬는데.'

장담하건대 엄마는 그 사루비아꽃과 칡 단물이 그리운 게 아닐 것이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거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엄마의 어릴적 경험은 가끔 아날로그 해서 재미있다. 엄마에게 칡즙 보냈다는 카톡을 하고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글자 좀 봤다고 또 숙취가 심해진다.

그러니까 해장은 칡냉면이다.

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