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주황색이 귤만 있는 거 아닌데, 섭섭한 당근. > 약재산책 | 혜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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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주황색이 귤만 있는 거 아닌데, 섭섭한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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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결혼한 (구)팀원한테 연락이 왔다.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왔는데 오늘 귤따기 체험해요. 회사로 귤 보낼게요."

이 계절에 제주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몇 가지들이 있다.

귤, 카카오 본사, 감귤 라이언, 귤, 귤, 귤. 바다. 이따금 동백꽃.

어쩌면 제주도를 한 번 밖에 안 가봐서 한정적일지도 모른다. 코끼리 두 마리가 있던 단체 숙소에서 담임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 몰래 가져다주신 말고기 육회와 흑돼지를 먹었던 고등학교 수학여행. 태풍 때문에 제주도 공항 바닥에서 교복을 입고 무한정 앉아있었던 기억. 졸다가 버스에서 내렸더니 갑자기 귤 초콜릿과 백년초 초콜릿을 꼭 사야할 것 같았던 기념품 판매장. 현무암. 주상절리. 한라봉. 성산일출봉.

열 일곱 살 단 한 번의 여행으로 속단하긴 이르지만 제주도는 그런 것들만 유명할 줄 알았다.

이 질문에 답해보자.

Q. 겨울이면 제주도에서 6~70% 이상 생산되며 색은 주황색, 맛은 달짝지근한 이것은?

제주도에 주황색이 귤만 있게요?
겨울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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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1답을 바라고 질문했지만 8답이 되어 돌아왔다.

 

A. 당근.

답은 겨울 당근이다. 국내 당근 재배지는 전국에 고루 퍼져있지만 겨울에는 따뜻한 제주가 주산지가 된다. 겨울철 강한 해풍을 맞고 견디며 자란 제주도의 당근은 단단하고 당도 높기로 유명하다. 겨울 찬 바람이 불면 잎까지도 갈 영양분이 뿌리를 향하며 겨우내 땅 속에서 무럭무럭 수분, 당분, 양분을 축적하며 맛좋은 당근으로 알차게 큰다.

당근은 호불호가 강한 야채이기도 하다. 별로 맛이 없어서 가려졌지만 당근은 사실 단맛이 굉장히 잘 느껴지는 작물이다. 얼마나 달달하냐면 케이크에 설탕 대신 쓰이기도 하고, 전쟁 시 당근으로 당분을 채우기도 했다고. 그 연장선으로 오늘날 캐롯케익(당근케이크)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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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식으로 유명한 그 영국에서도 캐롯케익은 맛있었다.

 

사실 원래 고대 당근은 주황색이 아닌 흰색이다. 인삼과 같은 조상을 가졌기에 채소계의 인삼으로 불리기도 했고, 옛날엔 식용보다 약용으로 쓰였다. 그러던 당근은 자연적으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며 노란색, 보라색으로 변하다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위적으로 주황색으로 개량되었다. 주황색은 베타카로틴의 색이기도 하다. 베타카로틴이 비타민A로서 눈에 좋은 작용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점점 더 주황색으로 개량되었고 색은 짙어지면서 카로틴 함량도 배로 늘었다. 베타카로틴과 주황색은 이제 당근의 고유함이 되었다.

또, 당근의 뿌리 역시 원래는 지금보다 얄쌍했다. 식물은 풀처럼 자라다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꽃이 늦게 피면 그 양분이 뿌리나 잎과 같은 다른 곳으로 전해진다. 당근도 그렇다. 당근이 겪어온 유전자 변이는 꽃을 피우는 시기에도 변화를 줬고, 뿌리로 양분이 전해지며 씨알이 굵어져 왔다.

당근.

- 베타카로틴(비타민A) 성분이 눈건강에 도움을 줌

- 시력보호, 야맹증, 결막염, 안구건조증 예방

- 강한 항산화와 항암 작용

- 피부 보습, 여드름 등 피부질환 완화에 도움

- 팩틴과 풍부한 식이섬유로 더부룩함을 줄이고 장 건강에 도움

- 노화방지, 탈모, 빈혈, 변비 등에 도움

- 풍부한 수분, 미네랄, 비타민으로 혈당관리, 체중관리에 도움

색, 외형, 영양분까지 변화했지만 아마 당근이 세상에 나고나서 진정한 당근이 아니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약재로만 쓰였던 때, 가축의 먹이로만 쓰이던 때에도 언제나 당근은 당근이었다. 그러나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끊임없이 거듭나오며 오늘날엔 대중적으로 식탁에 오르는 근본 야채가 되었다.

거듭나고 변화하는 당근의 최종장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태초에 세상 날 때의 자연적인 모습을 간직하면서 점점 더 자신만의 고유한 옷을 찾아 입어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쯤에서 가만히 나의 주황색을 찾아보게 된다.